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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라마 원경이 연일 화제입니다. 조선 건국 초기 왕자의 난에서 아들을 잃은 이성계를 연기하는 임성민 배우의 피맺힌 눈동자는 고려말 조선초 격동의 시기를 살았던 모든 등장 인물들의 모습을 상징하는 압도적인 장면이었습니다. 

    이성계 입장에는 아들에 의한 아들의 시해라는 비극, 이방원과 그의 아내 원경의 입장에서는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 전쟁, 드라마의 배경이 된 실제 역사는 언제 보아도 수많은 감정과 생각의 원천이 됩니다.  조선 3대왕 태종 이방원과 왕비 원경의 전쟁 같은 삶에 당신이 빨려들 수 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드라마 원경 자추연 이현욱 배우
    출처 tvn 원경 차주연 이현욱 배우

    혹자는 태종 이방원을 마키마밸리 뺨치는 현실 군주로 평가합니다. 

    실제로 그의 손에는 많은 피가 묻었지만 조선왕조는 그의 아들대에서는 안정을 구가하게 되었지요.  그리고 어쩌면 그보다 대담한 여성이 그의 아내였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드라마 원경이 각광받는 이유이죠.  tvn 의 드라마 '원경’ 외에도 KBS ‘용의 눈물’ 등 수 많은 드라마의 소재였고 아마 앞으로도 영원히 마르지 않는 콘텐츠의 원천이 될 시기, 원경과 이방원. 이성계. 세종이 살았던  시절의 역사적 배경을 아는 것은 지식을 넘어 극한 상황에 처한 인간을 이해하는 필수 교과서가 아닐까 싶습니다. 

     

    원경과 이방원의 관계 요약

    초기에 부부이자 정치적 동반자로 거듭난 이방원과 원경 두 사람은 종국에는 사랑의 배신자이자 정치적 정적이 됩니다. 원경은 이방원의 가장 강력한 후원자이자 참모였으나 말년에는 자신의 4명의 남동생을 비롯한 가족들이 이방원에 의해 몰살당하는 것을 지켜봐야 했습니다. 1420년 원경은 슬픔과 회한으로 병석에서 파란만장한 생을 마감합니다.  

     


    연상의 여인 

    1382년 16세 이방원은 2세 연상의 18세 원경과 혼인하게 됩니다.  1380년 황산대첩에서 왜구를 물리치고 떠오르는 영웅이 된 이성계 가문의  총명한 다섯째 아들과 성균관 사성이자 명문가인 여흥(여주)민씨, 민제의 둘째 딸의 결합은 두 가문 모두에게 흡족할만한 일이었습니다.

    죽음의 위기 속  이도(세종)의 탄생

    1387년,정도전  일파를 피해 겨우 목숨을 부지하던 시절 에 훗날 세종이 되는 아들 이도를 낳았습니다.  태종은  죽음의 위험에 처한 상황에서 낳은 아들이었고,  달리 할 수 있는 일도 없었기에 육아에 힘썼다고  세종실록 1419년 2월 3일자에 적고 있습니다.   이도는 위기 속에서 태어나 그 와중에 서른 셋이었던 엄마 원경왕후와 서른 둘의 아빠 이방원 모두에게 보살핌을 받는 특혜? 를 누리게 된 셈이지요.

    이 이야기는 왕위에서 물러난 태종이 왕이 된 세종 등을 불러놓고 자신의 지난 날의 이야기를 직접 들려준 것입니다.  이도 너는 아비인 내가 업어키웠다고 생색도 내고, 당시 그가 정도전과 이방원의 이복형이자 세자였던 이방석으로부터 배척됨은 물론 제거당할 위기에 처했음을 항변한 것이기도 합니다. 

    방원의 항변

     상왕 이방원은 죽음의 위기에 몰린 자신의 정당방위가 왕자의 난이었음을 현직 왕이자 아들인 세종에게 들려주고 실록에도 남기도록 한 것입니다.    이야기를 듣는 자리엔  세종외에도 양녕대군과 다른 신하들도 배석했었다고 합니다. 

    태종 이방원 입장에서는 고려왕을 지키고자 아버지 이성계을 처치하려고 한 정몽주를 자신이 정도전과 함심하여 제거함으로써 이성계와 조선을 지켰는데 아버지 이성계에게 인정받지 못했고, 나중에는 정치적 동지격이었던 정도전이 자신을 제거하려고 하기에  또 한 번 생사를 걸고 싸울 수 박에 없는 처지였음을 항변하고자 함이었을 것입니다. 

    거대한 권력의 암투 속에서 왕족과 권력자들은 존재 자체가 상대에게 위협이 되기도 합니다. 드라마 원경은 죽거나 죽이거나의 기로 속에 처했던  인간들의 이야기로 읽히기도 합니다.

     


     

    제1차 왕자의 난

    1398년(태조 7년)에 일어난 제1차 왕자의 난은 이방원이 주도한 정변이었습니다. 이 사건의 배경에는 태조 이성계와 이방원 사이의 갈등이 있었습니다 이성계는 조선 건국 후 둘째 부인인 신덕왕후 강씨의 소생인 막내아들 이방석을 세자로 책봉했습니다. 이는 개국 과정에 가장 공이 많았던 이방원의 불만을 샀습니다. 이방원은 형제 중 유일하게 문과에 급제했고 역성혁명 과정에서 큰 공을 세웠음에도 불구하고 공로를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이에 불만을 품은 이방원은 정도전을 제거하고 세자인 이방석과 그의 형인 이방번도 죽이는 정변을 일으켰습니다 이 사건으로 이방원을 반대하는 세력은 거의 소멸되었고, 그의 정치적 세력은 더욱 강화되었습니다

    제2차 왕자의 난

    1400년(정종 2년)에 일어난 제2차 왕자의 난은 이방원의 형인 이방간이 주도했습니다. 이방간 역시 왕위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고, 결국 이방원과 이방간은 서로 칼을 겨누고 싸움을 벌였습니다. 이 난을 진압한 이방원은 정종에게 왕위를 물려받아 1400년 태종으로 즉위하게 됩니다

    이성계의 반응

    이성계는 이방원의 행동에 대해 매우 실망하고 분노했습니다. 제1차 왕자의 난 이후 이성계는 더 이상 이방원이 지배하는 궁궐에 있을 수 없다고 느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두 사람은 부자지간이었지만, 사실상 원수지간이 된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결국 이성계는 궁궐을 떠나 자신의 고향인 함경도의 함흥 별궁으로 향했습니다. 그곳에서 남은 여생을 조용히 보낼 계획이었습니다

    함흥차사의 기원

    이방원이 왕위에 오른 후, 아버지 이성계를 개경으로 모셔오기 위해 여러 차례 사신을 보냈습니다. 이 사신들을 '함흥차사'라고 불렀습니다 함흥차사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일부 야사에서는 이성계가 사신들을 죽이거나 가두었다고 하지만, 실제 역사 기록에 따르면 그렇지 않았다고 합니다.  대표적인 함흥차사로는 성석린, 무학대사, 박순 등이 있었습니다. 특히 성석린은 이성계의 오랜 친구였고, 그의 설득으로 이성계가 잠시 개경으로 환궁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성계는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함흥으로 돌아갔고, 이방원은 계속해서 사신을 보내 아버지를 설득하려 했습니다

    이방원과 이성계의 관계

    이방원과 이성계의 관계는 복잡했습니다. 처음에는 이방원이 이성계의 엄청난 신임을 받았습니다. 이성계 집안의 드문 문신이 나왔다고 이성계는 이방원을 어떤 아들보다 자랑스러워 했습니다.  이방원은 개국 전날 이성계를 왕으로 추대하는 모임에 형제 중 홀로 참여할 정도의 실세였습니다

    그러나 조선 건국 후 이성계는 이방원을 의도적으로 개국공신에서 배제했습니다. 이는 신덕왕후의 영향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이후 이방원은 정도전을 제거하고 이방석을 죽이는 등의 행동으로 아버지의 신뢰를 잃었습니다. 이성계는 이방원의 행동에 크게 실망하여 함흥으로 떠났고, 두 사람의 관계는 회복되기 어려운 상태가 되었습니다

    이방원의 왕위 계승 과정은 피로 얼룩진 비극적인 역사였습니다. 두 차례의 왕자의 난을 통해 그는 결국 왕위에 올랐지만, 그 과정에서 아버지 이성계와의 관계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되었습니다.

    함흥차사 이야기는 이러한 부자간의 갈등을 반영하는 역사적 일화로 남게 되었습니다. 비록 일부 과장된 내용이 있지만, 이 이야기는 당시의 정치적 상황과 이방원의 왕위 계승 과정의 복잡성을 잘 보여줍니다.

    결과적으로 이방원은 태종으로 즉위하여 조선의 중앙집권체제를 강화하고 왕권을 확립하는 데 성공했지만, 그 과정에서 치른 대가는 결코 작지 않았습니다. 가족 간의 신뢰와 사랑을 잃은 것은 물론, 아버지와의 관계도 회복하기 어려운 상태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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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킹메이커 원경왕후의 역할

    원경왕후는 이방원이 왕위에 오르는 과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그녀의 주요 활동은 다음과 같습니다:

    제1차 왕자의 난에서의 역할

    원경왕후는 정도전 일파의 계략을 미리 눈치채고 대비했습니다.  그녀는

    1. 이방원의 시위패가 해산되고 무기가 불태워질 때, 몰래 병장기를 빼돌려 숨겼습니다
    2. 변고에 대응할 계책을 세웠습니다
    3. 아프다는 핑계로 남편 이방원을 무사히 집으로 불러들였습니다
    4. 숨겨둔 무기를 꺼내 이방원에게 직접 갑옷을 입혔습니다

    제2차 왕자의 난에서의 역할

    1400년 이방간의 반란 때도 원경왕후는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1. 망설이는 이방원에게 갑옷을 꺼내 입히고 대의에 따라 군사를 움직이게 했습니다
    2. 남편을 설득하여 형제간 싸움에 나서게 했습니다.

    정치적 재정적 지원

    1. 거사에 동원된 자금이나 인물들이 주로 원경왕후의 친정 쪽에서 나왔습니다.
    2. 원경왕후의 남동생 민무질은 정도전 쪽의 기밀을 빼내 제1차 왕자의 난을 성공시키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이처럼 원경왕후는 이방원의 정치적 동반자로서 그가 왕위에 오르는 공을 세웠습니다. 그녀의 지략과 행동력이 이방원이 위기를 극복하고 최종적으로 왕좌를 차지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평가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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